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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18회 작성일 23-01-1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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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성씨제도][성씨][중국][외국 성씨제도][한국 중국 비교]족보의 역사, 족보의 의의, 족보의 용어, 성씨제도와 족보, 성씨제도와 중국, 성씨제도와 외국 성씨제도, 성씨제도의 한국 중국 비교 분석(족보, 성씨)

 

자료소개글

족보의 역사, 족보의 의의, 족보의 용어, 성씨제도와 족보, 성씨제도와 중국, 성씨제도와 외국 성씨제도, 성씨제도의 한국 중국 비교 분석

 

목차

Ⅰ. 서론Ⅱ. 족보의 역사1. 한국 성관의 유래와 특징1) 한국의 성씨제도2) 한국적 성관체계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는 시기2. 양반사회의 발달과 족보1) 15세기 이전의 족보2) 조선전기의 족보3) 17세기후반 이후의 족보Ⅲ. 족보의 의의Ⅳ. 족보의 용어1. 시조 비조 중시조2. 선계와 세계3. 세와 대Ⅴ. 성씨제도와 족보Ⅵ. 성씨제도와 중국Ⅶ. 성씨제도와 외국 성씨제도Ⅷ. 성씨제도의 한국 중국 비교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지금의 사회는 무엇보다도 가정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시대이다. 또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의 성장으로 인해서 옛 전통을 살리되 우리의 전통 중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는 운동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러한 족보에 대해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이 족보를 조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족보(族譜)는 성씨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의 하나로 시조(始祖) 부터 역대 조상 얼과 우리나라의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가 담겨져 있으며, 우리의 뿌리를 알 수 있는 한 집안의 소중한 역사를 담은 책이다. 족보는 또한 우리의 선조들과의 만남의 장소이다. 족보 속의 선조들의 유의한 공적은 숭앙받기에 합당한 것이기에 스스로 그 후예임에 긍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는 우리 가족에 대한 애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가계의 영속을 존중하여, 민족의 자긍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족보는 개인의 권위나 지위보다도 가정을 중심으로 생각는 협동적 단결력을 함량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그러나 족보에는 여러 가지 폐단이 없지도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그 후예에 이르기까지 대우를 받게 된 소치로 족보를 위조하고, 나쁜 방향으로 족보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족보제도는 사회계급의 고정화를 가져오고,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을 조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족보나 종중사업에 너무 과열된 처사 때문에 학술의 지보나 지식의 발달이 지연되는 소요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족보제도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는 너무 조상의 명망이나 업적의 자랑에만 치중했던 족보를 혈통과 유전학을 중심으로 한 보다 합리성을 띤 족보가 되도록 힘써야 하고, 또한 씨족사회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 있던 동족의의를 종중과 종중사이의 협동은 물론 더 나아가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계(父系) 중심적인 족보 편성에서 탈피하는 새 체제도 연구되어야 하며, 후손들이 족보를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감각에 맞는 대중화된 족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전통을 중심으로 해서 잘못된 인습들을 고쳐가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반성과 노력이 요구되어진다. 최근에 이러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 되어지고 있는 실정인데, 그 예로 족보 안에 사진을 넣거나 한글로 풀어쓰거나 영상자료 형태로 제작하는 등 여러 가지 양식들이 시도 되고 있다.

 

참고문헌

1. 권오영(2010), 조선시대의 족보기록에 보이는 유교이념의 양상과 의미, 한국계보연구회2. 이성무(2010)한국의 성씨와 족보, 한국계보연구회3. 장인진(1994), 족보자료의 문헌학적 고찰, 계명한문학회4. 차장섭(2010),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과 특징, 역사교육학회5. Hwang Kyung-Moon(2010), 사회윤리를 반영해 온 '계보'들의 의미 : 한국사 속의 족보, 한국계보연구회6. Miyajima Hiroshi(2012), 동아시아세계 속의 한국 족보, 성균관대학교



족보발간(族譜發刊)

 

(1) 편찬위원회 구성

(2) 임원 선출

(3) 편찬위원회 구성도

(4) 편찬위원회 주요 업무

(5) 족보편찬규약(施行規則) 작성

(6) 재정문제(財政問題)

(7) 작업일정 수립

(8) 관리업무

(9) 품질 확인

(10) 족보편찬 작업흐름도

 

족보편찬공고 및 수단접수방법

 

(1) 족보편찬공고(族譜編纂公告)

(2) 수단금(收單金)=명하전(名下錢)

(3) 수단금(收單金) 징수(徵收) 방법

(4) 수단공고(收單公告) 및 수단접수흐름도

(5) 수단작성범례(收單作成凡例)

(6) 수단지(收單紙) 작성방법

(7) 수단(收單) 제출

(8) 집안에 족보가 없는 경우 족보 찾는 방법

(9) 세계도, 색인록, 자손록 보는 방법

 

족보전용편집프로그램 구입 또는 편집업체(編輯業體) 선정방법(選定方法)

 

(1) 업체 선정(選定) 개요

(2) 족보편집을 위탁(委託)할 경우 업체선정(業體選定) 시 주의사항(注意事項)

(3) 족보전용편집프로그램 주요 기능

(4) 족보 편집단가(編輯單價) 및 산출근거(算出根據) 요소

(5) 족보 편집 및 인쇄ㆍ제본 견적서 보기

(6) 족보 편집 및 인쇄ㆍ제본 계약서 보기

 

족보편집

 

(1) 족보편집(族譜編輯) 개요

(2) 족보편집 작업흐름도

(3) 보책 게재 순서(譜冊揭載順序)

(4) 족보 편집 시 항목별 사용 편집프로그램

 

(5) 사진, 문헌(文獻), 비문(碑文), 부록(附錄)등 편집

(6) 자손록(子孫錄) 편집

(7) 세계도(世系圖), 색인록(索引錄) 편집

(8) 벽자(僻字) 입력

(9) 교정(校正)

(10) 책 두께 조절

(11) 필름 출력

 

인쇄(印刷) 및 제본(製本)

 

(1) 인쇄 및 제본 개요

(2) 인쇄 및 제본 작업흐름도

(3) 인쇄 및 제본 업체 선정

(4) 인쇄용지(印刷用紙) 선정

(5) 인쇄(印刷)

(6) 제본(製本)

(7) 인쇄 및 제본 비용(費用)

(8) 인쇄 및 제본 소요시간

 

발송(發送)

 

결산(決算)

 

전자족보제작(電子族譜製作)



족보의 역사와 종류

 

족보(族譜)는 성씨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의 하나로 시조(始祖)에서 부터 역대 조상의 얼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겨져 있으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족보에 실려있어 나와 집안의 뿌리를 알 수 있는 한 집안의 역사서이다.

 

이에 따라 옛날부터 족보는 집안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이를 대할 때는 상위에 모셔놓고 정한수를 떠서 절을 두 번 한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 계신 조상을 대하듯 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 온 족보가 해방 후의 서양화와 핵가족화가 되면서 봉건사상의 유물로만 생각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또 지금도 '근본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었을 때 그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족보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족보는 '피의 기록이며 혈연의 역사' 이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켜온 족보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야 할 것이다.

 

족보의 역사

 

우리나라의 족보는 세계에서 부러워 할 정도로 잘 발달된 족보로 정평이 나있으며, 계보학의 종주국으로 꼽힌다. 외국에도 '족보학회'나, 심지어는 족보전문 도서관이 있는 곳이 있는 등 가계(家系)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우리처럼 각 가문마다 족보를 문헌으로까지 만들어 2천년 가까이 기록 해온 나라는 없다. 현재 국립 중앙도서관의 계보학 자료실에는 600여종에 13,000여권의 족보가 소장되어 있다.

 

성씨 관계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는 족보는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으며, 개인의 족보를 갖게 된것은 한(漢) 나라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賢良科)제도를 만들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후 모든 족보의 표본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의종(18대, 1146~1170)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좭이 처음이다. 그러나『고려사좭를 보면 고려 때에도 양반 귀족은 그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관제(官制)로서도 종부시(宗簿寺)에서 족속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보계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 1476년(조선 성종7년)의 『안동 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이후 1565년(조선 명종20년)에는 『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좭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 때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족보의 대부분은 족보간행을 위해 초안을 하고 관계 자료를 충실히 보완한 뒤 간행에 착수하여 내용에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족보들은 초안이나 관계 자료의 검토, 고증도 없이 자의적으로 간행된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자의적인 수식이 가하여 졌음은 물론이며 조상을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선대의 벼슬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작하고, 심지어 명문 집안의 족보를 사고 팔거나 훔치는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시조의 유래를 중국에 두어 기자(기원전 1122년 우리나라에 왔다고 함)를 따라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거나, 중국의 인물을 고증도 없이 조상이라고 하는 식으로 족보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중화사상에 물들은 일반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족보를 간행함으로써 자신의 가문의 격을 높이려는 마음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족보의 종류

 

1. 대동보(大同譜)

 

같은 시조 아래에 각각 다른 계파와 본관을 가지고있는 씨족을 함께 수록하여 만든 족보책이다.

 

 

2. 족보(族譜), 종보(宗譜)

 

본관을 단위로 같은 씨족의 세계를 수록한 족보책으로, 한 가문의 역사와 집안의 계통을 수록한 책이다.

 

 

3. 세보(世譜), 세지(世誌)

 

한 종파 또는 그 이상이 같이 수록되어 있거나, 한 종파만 수록된것을 말하며 동보(同譜), 합보(合譜)라고도 한다.

 

4. 파보(派譜), 지보(支譜)

 

시조로 부터 시작하여 한 종파만의 이름과 벼슬, 업적 등을 수록한 책이다. 이들 파보에는 그 권수가 많아 종보를 능가하는 것도 적지 않다. 파보는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증가되어가고, 그 표제에 연안김씨파보, 경주이씨 좌랑공파보, 순창설씨 함경파세보 등과 같이 본관과 성씨 외에 지파의 중시조명 또는 집성촌, 세거지 지명을 붙이고 있으나, 내용과 형식에서는 족보와 다름없다.

 

 

5. 가승보(家乘譜)

 

본인을 중심으로 수록하되, 시조로부터 자기의 윗대와 아랫대에 이르기까지의 이름과 업적 ,전설, 사적을 기록한 책으로 족보 편찬의 기본이 된다.

 

 

6. 계보(系譜)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이름자만을 계통적으로 나타낸 도표로서, 한 씨족 전체 또는 한 부분만을 수록한 것이다.

 

 

7. 가보(家譜)와 가첩(家牒)

 

편찬된 형태, 내용에 상관없이 동족 전부에 걸친 것이 아니라 자기 일가의 직계에 한하여 발췌한 세계표(世系表)를 가리킨다.

 

 

8. 만성보(萬姓譜)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라고도 하며, 국내 모든 성씨의 족보에서 큰줄기를 추려내어 모아놓은 책으로 모든 족보의 사전 구실을 하는 것이다. 『청구씨보(靑丘氏譜)좭, 『잠영보(簪纓譜)좭, 『만성대동보(萬成大同譜)좭,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좭 등이 있다.

 

 

9.기타

 

『문보(文譜)좭, 『삼반십세보(三班十世譜)좭, 『진신오세보(縉紳五世譜)좭, 『호보(號譜)좭와 같이 현달한 조상의 세계를 명백히 하려고 한 보서(譜書)나 『대방세가언행록(帶方世家言行錄)좭, 『보성선씨오세충의록(寶城宣氏五世忠義錄)좭 등과 같이 조상 중 충,효,절,의가 특히 뛰어난 사적과 공훈을 수록한 것도 있다.

또한, 환관(내시) 사이에도 계보를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이 다른 자손을 입양시켜 자손으로 삼고 가계를 보존하고 있는 양세계보(養世系譜) 등도 있다.


족보族譜 [정의] 본관을 같이 하는 성씨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씨족의 역사책. [개설] ‘동조분파왈족(同祖分派曰族)’요 ‘소성고족왈보(昭姓考族曰譜)’라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성씨(姓氏)가 보편화되는 시기는 고려 초기로 본다. 이 시기에 본관제(本貫制)가 시행되는 것에 근거한다고 보겠다. 이 시기에 그동안의 세거지(世居地)가 본관(本貫)이 되었고, 본관제의 시행은 중앙의 지방 통제책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씨와 본관제가 보편화되었다고 하여 족보(族譜)가 편찬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른바 관혼상제에서 불교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양측적 친족 관계가 유지되는 양상이었고, 이로 보면 고려 초기는 가부장적 친족 질서 내지 부계 중심의 종족 관념이 발달한 시기는 아니었다고 하겠다. [족보 편찬] 족보의 편찬은 1476년(성종 7) 『안동 권씨 성화보(成化譜)』와 1562년(명종 17) 『문화 유씨 가정보(嘉靖譜)』, 그리고 1565년(명종 20) 『강릉 김씨 을축보(乙丑譜)』에서 그 시원을 찾는다. 이로 보면 족보가 편찬되는 시기는 조선 초기로 보아야 한다. 다만 조선이 건국되고도 한 세기 정도 경과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이 시기의 족보는 그 기재 양식을 통해 당시의 종족 관념과 이에 토대한 사회상의 변화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주목되기도 한다. 족보는 성리학에 기초한 종법(宗法)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말에 성리학이 수입되었고, 이 신유학을 건국 이념으로 수용하면서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새로운 건국 이념이 전국 지방 사회에 정착되기까지의 과도기가 설정된다. 이로써 가장 이른 시기에 편찬되는 족보라고 하더라도 이 과도기를 경과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적이라고 하겠다. 족보의 편찬은 17세기에 활발해졌다면, 18~19세기에는 보편적 양상이었다고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가부장적 사회 질서의 정립과 맞물려 있다. 16~17세기에 동족 마을 내지 집성촌의 형성이 활발해지는 것도 이러한 종족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하겠고, 이러한 종족 관념에 근거하여 관혼상제의 생활 양태가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족보 편찬이 보편화되는 것은 이러한 생활 양태의 변화와 병행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족보의 기재 양식은 정형화된다. 종적으로 세계(世系) 즉 부자(父子) 관계를 설정하고 횡적으로 같은 세대를 장자(長子) 우선순위로 설정하는 형태로 고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도 시대별 변화상을 짚어 볼 수 있다. 가장 주목되는 점이 양자(養子) 제도이다. 이른 시기에 편찬된 족보상에서 양자가 영입되는 양상은 파악되지 않는다. 이 점을 가계(家系) 내지 혈통 계승 의식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면, 후기에 파악되는 양자 제도는 또 한 시기를 경과하여 도입되는 종족 관념, 즉 혈통 계승 의식의 산물로 볼 수 있겠다. 족보의 종류도 후대에 이르면서 다양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당초에는 본관지에서 토성(土姓)을 중심으로 편찬되기 시작하였다면, 후대에 오면서 현조(顯祖)를 중심으로 이른바 파보(派譜)가 편찬되는 추이를 살필 수 있다. 이를 위해 가호마다 자신들의 계보를 정리한 가승(家乘)의 작성이 보편화된다. 이로써 족보는 대동보(大同譜)와 파보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추이에 따라 족보 편찬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족회(族會) 또한 대종회(大宗會)·대문중(大門中)과 소문중(小門中)으로 대별될 수 있다. [문중 조직] 문중 조직의 중심에는 족장(族長)과 종손(宗孫)이 존재하였다. 문중 조직의 회의체로서 문회(門會) 내지 종회(宗會)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족장이 수행하였다면, 종손은 씨족의 종가(宗家)를 계승하면서 씨족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은 상호 보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선조의 시묘(侍墓)와 시제(時祭)를 주관하고, 족보·문집(文集)·행장(行狀)을 편찬하고, 사당(祠堂)과 재실(齋室) 등을 건축하여 관리 운영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씨족의 결속과 화합을 도모하였다. 한편으로 문장(門長)과 종손 사이에는 갈등이 야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문중의 재산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문중 조직의 특성상 각종 명목의 위답(位畓)이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공동 재산의 운영을 둘러싸고 조직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갈등은 주로 문회 내지 종회에서 야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문회 내지 종회는 회의체로서 문중 조직의 공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하였고, 이러한 공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그 주도적 역할을 이행하는 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야기되는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 문중 조직에서 문중 서원(門中 書院)을 구성하여 운영하거나, 지방 사회의 각종 공공 기구의 운영권을 주도하기 위한 문중 간의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문중 조직의 내부적 갈등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갈등은 각종 사안의 사체(事體), 즉 사리(事理)와 체면(體面)을 중시하는 것으로서 지방 사회에서 야기되는 이른바 전례 논쟁(典例 論爭)의 성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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