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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 김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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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43회 작성일 23-01-1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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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재 김영유 연보(退齋 金永濡 年譜)


수지 중추부사(守知中樞府事) 김영유(金永濡)가 졸(卒)하였다. 

철조(輟朝), 사부(賜賻), 조제(弔祭), 를 전례와 같이 하였다. 

김영유(金永濡)의 자(字)는 택부(澤 夫)이고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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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諡號)는 공평(恭平)인데 공평하고 순(順)함으로 위를 섬기는 것을 공(恭)이라 하고 일을 하는데 법이 있는 것을 평(平)이라 한다.
사신(史臣)이 논평(論評)하기를 “영유는 성품(性品)이 순근(醇謹)하고, 직무(職務)를 받들기에 게으르지 아니하므로 공청(公淸)하다고 일컬어 졌다.” 하였다.


〈原文〉
守知中樞府事 金永濡 卒 輟朝 賜賻 弔祭如例。
永濡字澤夫, 慶州 人 正統成午中生員, 丁卯, 中文科 選補 承文院正字。
壬申, 拜宣務, 司憲府監察, 轉司諫院 正言, 遷刑曹佐郞。
天順 丁丑, 補平壤少尹, 累遷至判承文院事。
成化 乙酉, 加通政, 成均館大司成, 丙戌, 遷 戶曹參議, 成子 守黃海道 觀察使, 己丑, 拜禮曹參議,
辛卯, 拜忠淸道觀察使, 特加嘉善, 壬辰, 同知中樞府事, 癸巳, 禮曹參判, 甲午 慶尙道 觀察使,
乙未 刑曹參判, 尋遷 同知中樞府事。 丁酉 司憲府大司憲, 戊戌 全羅北道觀察使, 
己亥 同知 中樞府事, 乙巳 開城府留守。丁未 以七十請致仕, 不允, 拜刑曹參判, 庚戌 陞 嘉靖,
壬子 拜守知中樞 府事, 至是以疾卒, 年七十七。諡恭平, 敬順事上恭, 執事有制平。
史臣曰: “ 永濡 性醇謹, 奉職不懈, 以公淸稱。”  출처 조선왕조 실록 성종 25년(1494) 12월 6일자.



퇴재 김영유 가장(退齋 金永濡 家狀)


출전(出典) : 「퇴재선생집(退齋先生集)」부록(附錄) 3, 가장(家狀), 215-219쪽.
찬자(撰者) : 김세환(金世煥 : 17世孫)
비고 : 묘는 광주군(廣州郡) 오포면(五浦面) 신현리(新峴里) 다사동(多沙洞) 술좌지원(戌坐之原)에 있다. 김영유는 천자가 준매하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효성스러웠다. 과거에 합격해서는 여러 도의 방백(方伯)을 역임했는데 사무가 청백하고 진심으로 백성을 다스려 왕에게 표창을 받았다. 안동의 영호루(映湖樓)에서 지은 시가 걸려 있는데 안동 사람들이 김영유를 보는 것 같이 그 누각을 사랑했다고 한다. 김영유는 중국의 김식(金湜), 예겸(倪謙), 황찬(黃瓚), 진유(榛楡) 등 과도 깊이 교류해 그의 글이 「황화집(皇華集)」. 「동국시선(東國詩選)」. 「공교잡지(孔敎雜誌)」 등에 실려 명성이 중국에까지 떨쳤다. 이에 후손들이 김영유를 추모하고자 산음현 철수리(鐵水里) 효렴산(孝廉山) 아래 효산서원(孝山書院)을 세웠다. (金永濡 家狀 및 神道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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